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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손이 기억하는 세상에 대해 함께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손이 기억을 만들었고, 손이 습관을 만들었고, 손이 문화와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무심코 움직이는 손이 뇌에 어떻게 연관되어 지는지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손이 기억하는 세계가 있다.
손이 기억하는세계
도자기를 할 때 처음에는 흙덩이의 중심을 잡는데 신경을 쓰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모양을 만들지를 생각하면 저절로 그 모양이 만들어집니다. 즉 손이 기억하여 모양이 만들어집니다. 현대사회에서 문명의 이기들로 인해 점점 손으로 기억하는 세계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밭을 일구고, 친구와 놀이를 하고, 물건을 만들고, 세상을 어루만지며 확장되었던, 손이 기억하는 세계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리차드 도킨스의 <조상 이야기>에 보면 손의 발달은 다른 동물과의 생존경쟁에서 영장류를 살아남게 했습니다. 식물들이 살아남기 위해 씨를 교묘하게 열매에 숨김으로써 동물은 다양한 방법을 써서 열매를 까먹게 되었고, 야자수, 호도, 파인애플, 코코아 등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정교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손을 사용하게 되면서, 또 다양한 형태의 먹거리를 먹기 위해 씹는 활동을 통해 뇌의 발달이 가속되었습니다.
저명한 인류학자 스티븐 미슨이 쓴 <마음의 역사>에서는 도구의 사용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을 높였으며 이로 인해 뇌의 발달을 가져왔다고 설명합니다. 사냥을 위해 점점 복잡한 형태의 도구를 사용하면서 집단 활동이 늘어나고 언어가 생겨나면서 호모 사피엔스는 농경문명을 일구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뇌가 만들어낸 가상세계의 현실화가 다름 아닌 도시라고 요로 다케시는 <바보의 벽>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몸의 감각과 뇌의 지도
우리의 몸에서 올라가는 감각정보는 지도화되어 뇌에 저장된다. 몸의 감각은 뇌의 신체 지도를 통해 감각이 모이고 움직임을 만들어냅니다. 1930년대 케나다의 의사 펜필드와 브로드만은 뇌의 각 영역을 구분하는 연구를 했고, 몸 감각의 경우에는 뇌의 중심고랑 뒤쪽에 위치하는데 몸 영역이 17개로 나누어집니다. 방광․직장-발가락-아랫쪽 다리-위쪽 다리-가슴․배-어깨-팔-손-소지-약지-중지-검지-엄지-목․얼굴-혀-턱-인두․후두입니다. 이 중에 팔과 손에 해당되는 영역만 8개입니다.. 뇌에서 척수로 보내지는 정보는 척수로라는 신경다발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중 전체 척수로의 90%에 해당하는 대뇌척수로는 대부분 손을 사용하는데 쓰입니다.
이렇듯 뇌에서 손이 많은 부위를 차지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우리의 뇌가 결국 손을 사용하면서 확장되었다는 결론을 유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어의 탄생>을 쓴 음성학의 대가 필립 리버만이 언어기능은 손 사용을 위한 복잡한 형태의 뇌 기능에서 유래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성인 뇌졸중이나 뇌경색 환자가 손놀림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뇌의 많은 활동이 손을 사용하는 데 쓰이기 때문입니다. 소아 재활치료를 받는 아이 중에는 계속해서 손뼉을 치거나 손가락 빨기, 손 흔들기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동행동도 우리의 뇌가 지속적으로 깨어 있으려는 노력의 결과입니다. 손이 뇌에서 가장 많은 부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손에 있는 감각기관을 자극하여 각성을 높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손을 통해 뇌에 들어가는 정보가 다른 감각계보다 더 많기 때문입니다.
손으로 만드는 커피맛
보통 우리는 오른손으로 커피를 마십니다. 어떤 커피든 상관이 없습니다. 반대편 손으로 바꿔서 마셔보면 마술을 부린 것도 아닌데 맛이 달라져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니면 밥을 먹을 때 손을 반대쪽으로 바꿔서 먹어보면 금세 느낄 수 있습니다. 맛을 구성하는 조건에는 혀에서 느껴지는 감각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향기, 음식의 색깔, 이에서 느껴지는 질감, 식당의 분위기, 누구와 식사를 하고 있는지까지 모든 조건이 포함됩니다.
중추신경계가 손상된 환자 경우에는 이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손을 사용하지 못하면 평소에 보았던 세계까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면서 다른 느낌을 만듭니다. 심지어는 말을 하는데 더듬거리거나 생각이 이어지지 않기까지 합니다. 몇 년 전에 나온 옥스퍼드 논문 중에 기저핵의 뇌 지도에 관한 논문이 있는데. 손, 입, 눈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이 서로 겹쳐 있다는 것입니다.
손과 눈으로 문자를 쓰고, 눈과 입으로 표정을 만들며, 입과 손으로 대화를 한다. 이야기를 할 때 손을 사용하지 않고 해보면 어색함을 느낄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의 경우는 말이 잘 이어지지 않습니다. 마치 중추신경계 환자가 손을 쓰지 못하면서 일어나는 일련의 현상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납니다. 뇌에 입력되는 정보는 한 가지 감각이 아니라 연합된 감각이 모여서 입력됨을 알 수 있습니다.
감각이 모여 기억이 된다는 사실에서 손을 사용하는 것의 중요성이 드러납니다. 우리의 뇌는 하나의 감각만을 구분하여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기억은 하나의 감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통합된 감각을 통해 만들어진 연관기억이기 때문입니다.
손으로 기억하는 학습
손으로 글을 쓰면 손에 쥔 펜의 종류에 따라 글씨가 조금씩 달라집니다. 손으로 글을 쓰면서 여러 종류의 펜을 사용하면 노트 전체에 표나 그림을 어떻게 채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글쓰기를 할 때도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데, 때때로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이야기의 흐름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되도록 정자체로 예쁘고 가지런하게 쓰려고 노력하면 글씨를 쓰는 동안 집중력이 높아집니다. 거기다 펜으로 글을 쓰면 생각보다 손이 훨씬 느리게 움직이는 지연현상이 일어나 글에 대해 더 심사숙고하게 됩니다.
손을 사용해 공부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 그리기이다.
책에 있는 글의 대부분은 이미지를 글자로 전환해서 적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선명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세상을 더 많이 기억하고 있는 것과 같다. 저명한 심리학자 루리야가 기억술사 S와 30년 동안 관찰하여 쓴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 보면 기억하는 방법이 나옵니다. 하나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그 이미지에 기억을 얹는 방법을 씁니다 이를테면 어렸을 때 거리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거기 우체통에 기억해야 할 내용을 대입시킨다. 이런 방법이면 그림 하나에 모든 정보를 포함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기억이라는 것은 언제나 부착점이 필요합니다. 지도를 그리면서 지명을 익히면 더 잘 알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뇌과학 공부를 할 띠 뇌에 관한 이미지를 100개 이상 외우고 나면 모든 지식이 그 이미지 위에 덧씌워져 함께 기억되기 시작합니다. 일종의 연관기억입니다.
또 예를 들어 낯선 카페에 들어가서 손을 씻을 때 맡은 쑥향기에서 어린 시절 멱감을 때 장면이 떠오르르기도 합니다. 그때 귀에 물들어가지 말라고 쑥을 뜯어 귀를 막았기 때문입니다.. 쑥향기가 하나의 기억을 불러오는 장치로 작용한 겁니다 이처럼 하나의 기억이 다른 기억을 불러오는데 이것을 연관기억이라고 합니다.
인간다움으로 이끄는 손의 세계
뇌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손입니다. 모든 감각은 연합적으로 모여서 입력되는데, 뇌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손을 사용하는 것이 기억의 효율성을 가장 극대화할 수 있게 합니다. 결국 신경세포를 어떻게 자극할 것인가가 핵심입니다. 쓰고, 그리고, 만지고, 조작하고, 조각하기 같은 활동으로 손의 활용도를 높이는 것이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게 합니다.
오랜 훈련과 수련으로 손의 움직임이 자동화되어 움직이게 됩니다. TV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에서 나오는 달인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밥알의 개수가 항상 같은 초밥의 달인, 떡의 크기가 같은 떡의 달인, 옆 사람과 수다를 떨면서 화장품 뚜껑을 1분에 50개 이상을 닫는 뚜껑의 달인 등. 손으로 기억된 세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손이 기억하는 세계는 대부분이 무의식의 영역입니다. 현관문 잠금장치의 비밀번호를 모르다가도 그 앞에 가면 손이 저절로 누르고 있는 것을 발견하듯이. 손이 기억하는 세계, 그 세계가 확장되었을 때 창의성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기억이 만든 세계가 우리의 삶이라면 그 기억의 대부분을 사용하는 것은 손을 통해서입니다. 생각하는 것을 글이나 이미지로 현실에 구체화시키는 것은 손을 통하지 않고는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이며, 손이 기억하는 세계가 우리를 인간다움으로 이끕니다.
손이 기억하는 세상이 있다.
밥을 먹으면서 수저를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우리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글을 쓸 때 볼펜을 어떻게 쥐고 움직여야 하는지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옷을 입을 때 어떤 옷이던지 보는 순간 손이 알아서 옷을 내 몸에 입혀 줍니다. 전구를 갈아 끼울 때 어떻게 세 손가락으로 잡아야 하는지, 다섯 손가락으로 잡아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지금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손은 자판의 부호가 어떻게 되는지 잊은지 오랩니다. 손이 기억하고 있는 세계가 있는 까닭입니다. 이렇게 무심코 하는 행위 너머에는 의식을 통해 만들어진 무의식의 세계가 존재하는데, 처음에 의식적으로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세계입니다.
한글 자판을 처음 배울 때 손가락 하나 하나에 자판의 부호가 어디 있는지 한 참을 헤매게 됩니다. 글자를 쓸 때도 또박 또박 연필이 부러져라 쓰고 또 씁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이런 의식적 단계가 지나면 자연스럽게 글자를 쓸 수 있게 되는데. 여기에 의미가 만들어집니다. 더 많이 만지고, 더 많이 조작하고, 더 많이 두들기고, 더 많이 손을 사용할 때 손이 기억하는 세상이 확장되는 것입니다.
손이 만든 세상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내어 놓은 피렌체의 전설은 모두 도제 교육을 통한 손의 반복 학습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손을 사용하여 확장된 공간에 기억이 머물고, 생각이 머물고 창의성이 솟아납니다. 몸이 가지는 감각의 세계를 통해 문화가 만들어 졌고,모방과 학습은 모두 몸을 통해 태어난 것입니다.
손이 기억하여 만든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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